약침 암치료 사기 판결의 뒷이야기

산삼 약침 암 치료 사기 판결이 언론보도는 간단히 나갔지만 의미가 굉장히 큽니다. 먼저 같은 사건에 대해서 환자의 유가족에게 진료비를 돌려주라는 민사소송 결과도 있기는 했지만, 이 형사 판결이 제 생각에는 2020년에 벌어진 일들 중 가장 큰 사건 같습니다.
일단 한의사들이 ‘혈맥약침’이라는 명칭을 붙였던 정맥주사를 불법으로 본 최초의 판결입니다. 이번 판결로 정맥주사는 한의사의 허용 범위를 넘어선 무면허의료행위가 확실해졌습니다. 한의사들에게 정맥주사가 허용되면 비타민이나 미네랄도 천연물질에 들어있는 성분이라며 자기들도 해야 한다고 나섰을 것 같습니다.
앞서서 대법원에서 한의사가 혈맥약침으로 환자에게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판결이 있었는데, 그 판결이 의료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다루지는 않았었습니다. 그 사건의 1심 판결 때 한의협은 “이번 법원판결을 약침 전체의 문제로 침소봉대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선전하고, 한의약 폄훼와 한의사의 명예를 훼손하는데 악용하는 세력이 있다면 법적조치는 물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는 황당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한방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 2015년 한의협 보도자료 https://www.akom.org/Home/AkomArticleNews/609685?NewsType=2 )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는 이 사건은 별 볼일 없는 한의사가 조잡하게 사기 친 사건이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상대는 유명하고 잘 나가는 소람한방병원입니다. 언론에서 어디인지 밝히지를 않으니 다들 이 점을 간과하고 ‘유죄 판결 받았으니 망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2014년 소송 시작 때에는 소람한의원이었는데 소람한방병원으로 확장해서 의사도 고용하고 강남에 큰 빌딩 두 채에서 영업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직접 가봤는데 강남의 빌딩 두 곳 모두 아무 탈 없어 보였습니다.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이 속았다 싶어서 고소를 했더니 저절로 사기 판결이 나온 사건이 아닙니다. 이 소송은 전의총이 주도했고, 한특위와 저도 관여해서 “한의사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법원에 설득시켜 결과를 쟁취한 것입니다.
상대는 법무법인 세 곳에서 총 8명의 변호사를 선임했고, 2014년부터 시작된 소송이 6년을 끌다 2020년이 되어서야 판결이 나왔습니다.
소람한방병원 홈페이지에 연구소장이라고 소개된 권기록 한의사는 사건 당사자는 아닌데, 상지대 한의대 교수 출신으로 약침 관련 논문이 100편이 넘고 그 중에 산삼약침 관련이 수십 편입니다. 대한약침제형연구회 회장이며 기린한의원 부설 원외탕전실 대표이기도 합니다.
한의사들은 산삼약침 관련 논문들을 근거로 제출했고, 저와 의사선생님들이 세포실험·동물실험·증례보고 등 수십 편의 논문 중 단 하나도 암치료 효능을 입증하거나 한의사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판결문에 “한국약침학회 공식입장 및 증인 권기록의 법정진술에 따르면 경구복용 아닌 혈맥주입을 통한 산삼 진세노사이드 성분의 항암효과에 대하여는 명확한 임상결과가 부족하여 한의학계에 정설이라 보기 어렵고, 산삼약침에서는 진세노사이드 성분이 없어야 한다는 등 산삼약침의 권장성분이나 제조법 등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니, 논문에 대한 반박을 한의사들도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소람한의원 홈페이지에 말기암 환자 호전사례라며 제시됐던 CT 영상을 38건 중 36건은 동일한 영상이거나 비교가 불가능한 서로 다른 부위의 사진이며, 2건의 영상에서만 호전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영상의학과 전문의 선생님이 반박했습니다. 호전 사례도 원인이 약침이 아닐 수 있어서 근거가 될 수 없음도 설명했습니다.
이 한의사들이 애매모호한 ‘한의학적’ 근거로만 환자에게 주장을 했으면 한의사들이 다들 그렇듯이 별 탈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화학성분을 언급하고, CT 영상을 들이밀고, 논문들을 내세우니까 사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과학의 영역에 들어와 심판이 가능해졌습니다.
한의사들은 한의학의 영역은 의사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치료법의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일은 현대의학이나 대체요법이나 모두 같은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암환자에게 어떤 한약을 사용하고 어느 혈자리에 침을 놓아야 하는지 한의학적 문제는 한의사들끼리 따지더라도, 그것이 환자에게 효과를 나타냈는지에 대한 검증은 한의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 보듯이 의사들은 암환자가 악화됐다고 판단하는데, 한의사가 "한의학적으로는 호전됐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소람한방병원 홈페이지를 보니 산삼약침은 더 이상 언급이 없지만 “경혈약침은 암환자의 전반적인 면역력을 높여줌과 동시에 뛰어난 항암효과를 가지고 있는”이라고 주장하는 등 여전히 암 치료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한의사들의 이런 주장이 엄밀한 임상시험으로 검증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둬야 합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대형 제약회사가 벌써 치료제를 개발했겠지요.
정부 또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방관련기관이 환자들이 제대로 알고 판단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전혀 안 하고 자꾸 환자들이 한의사한테 현혹되도록 만드는 짓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명하다가 맨날 고소나 당하죠. 이 글도 소람 언급했으니 고소당할 것 같은데, 언급 없이 잊혀져서는 안 될 일이라 제가 나서야겠습니다. 유죄는 안 나오겠죠. 환자들은 한의사들이 고소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객관적인 정보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 관련 기사들 보시고 소람에서 같은 피해를 당한 분들(대부분 돌아가셨을테니 유가족 분들)은 제 메일 주소 kang@i-sbm.org로 메일 보내주시면 의사협회와 함께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른 한의원에서 피해를 당하신 분들도 연락주시면 도와드릴 방안을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