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 기대는 첩약급여화 대상 질환

이번 달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대상 질환에 대해 10일까지의 한약 치료비의 절반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고 환자는 나머지 절반을 부담한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던 한약을 처음으로 보장하겠다고 선정한 세 가지를 선정했다. 그렇다면 한약 중에서 효과가 가장 뛰어나고 기간이 10일이므로 10일 간의 치료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질환을 선정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약 중에는 효과가 뛰어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런 기준으로 선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정된 질환은 월경통, 안면마비(벨마비), 뇌졸중(중풍)후유증 세 가지다.
한방에서는 구안와사라고도 부르는 안면마비는 초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안면마비의 원인이 뇌의 문제라면 위급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도 중요하다. 일반적인 벨마비라면 몇 주에서 몇 달 이내에 대개 완치가 되는데, 초기 스테로이드와 항바이러스제 치료가 완치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여러 임상시험 근거가 있다. 일부는 완치되지 못하고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기도 하는데,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후유증이 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뇌졸중 후유증도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뇌졸중은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고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의사들도 잘 알아서인지 첩약급여화 대상 질환을 “뇌졸중”이 아닌 “뇌졸중후유증”으로 했다. 후유증을 치료하는 기간에도 재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의사의 진료를 받는 편이 안전하다.
그래서 이 점을 지적하려고 자세히 살펴봤더니, 대한한의사협회 홍보물에서 안면마비와 뇌졸중후유증에 대해 의사의 치료와 병행하라고 홍보하고 있다.
예전에 안면마비 치료에 대한 기본상식을 모르는 한의사가 스테로이드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환자에게 말해놓고 뒷감당 때문에 하소연하는 한의사들 비밀카페 글을 소개한 적이 있다.
최초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세 질환 중에 두 가지가 의사의 진료에 병행하겠다는 질환이라는 점은 한의학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첩약급여화에 대한 한의협의 홍보가 기본 상식이 없는 한의사들을 교육시켜서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받을 기회를 박탈하지 않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도 있겠다.
코로나19 치료제 관련 소식들을 보면 치료제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수백명, 수천명 규모의 엄밀한 임상시험으로 검증한다. 클로로퀸 및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의사들의 치료 사례와 소규모 연구 등에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몇몇 국가에서는 코로나19 진료지침에 권장되기도 했으나, 뒤이어 나온 대규모 임상시험들에서는 모두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의학은 첩약급여화 대상으로 선정된 질환들조차 현대의학의 기준에서 신뢰할만한 수준의 연구가 없기 때문에 치료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건강에 해를 끼칠지 알 수 없다. 물론 나는 반값한약이 아니라 공짜한약이라도 먹지 않겠다.
강석하 kang@i-sb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