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임상진료지침은 한의사를 위한 면죄부?

한의계에서는 요즘 표준임상진료지침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30억 예산이 배정되었다.
한의사들이 각각의 치료법들의 근거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어떤 치료가 효과가 있고 어떤 치료가 도움이 안 되는지 자료를 만든다면 반길 일이다. 한의사들이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치료법만 행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방 치료가 "효과에 대한 근거가 부족해서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 따위는 애초에 담을 생각도 없이, 한방 치료를 지지하는 질 낮은 연구들만 수집해 면죄부를 만들기 급급하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값비싼 쓰레기를 제작하는 꼴이 된다.
과연 실태가 어떤지 올해 3월 발간된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한의임상진료지침을 살펴보자.
먼저 권고등급은 아래와 같다.
그런데 신기한 등급이 있다. GPP라는 등급인데 근거자료는 부족하지만 지침을 만드는 사람들의 경험을 근거로 권고한다는 의미다. 이럴거면 연구비 받아먹지 말고 한의대 교수들끼리 홈페이지 하나 만들어서 각자의 경험담을 모아서 진료지침 만들면 될 일 아닌가?
아래는 진료지침의 결론 요약이다. 진단 및 평가에 대해서는 모두 GPP 등급이고 한약에 대해서는 B가 셋에 C가 하나 있다. 침에 대해서는 아토피로 인한 가려움증 완화에 A 등급을 매겼고, 침을 어디다 놓을지에 대해서는 GPP 등급으로 권고하고 있다.
한의사들은 아토피에 침 치료를 권고하는데 해외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가장 최근에 나온 아토피 피부염 침 치료에 대해 호주의 연구자들이 쓴 체계적 문헌 고찰 논문의 결론은 우리나라 한의사들과의 결론과는 완전히 다르다.
"There is currently no evidence of the effects of acupuncture in the management of AD, and no evidence-based recommendations or conclusions can be made from this review. "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침술의 효과에 대해서는 현재 근거가 없고, 근거 기반의 권고나 결론을 이 리뷰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 (Tan, H. Y., Lenon, G. B., Zhang, A. L., & Xue, C. C. (2015). Efficacy of acupuncture in the management of atopic dermatitis: A systematic review. Clinical and Experimental Dermatology, 40(7), 711–716. )
호주 연구진은 효과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결론인데 한의사들은 당당하게 A등급으로 권고하고 있다.
다음은 한약을 보자. 한약에 대해서는 B가 셋이고 사상의학적 처방은 C이다.
“한약치료가 양약치료보다 효과적이거나 안전할 수 있으며, 임상의의 판단에 따른 한약치료의 우선적 적용에 대하여 고려해야 한다”라는 B등급 권고내용은 상당히 위험해보인다.
2013년 발표된 아토피성 습진에 먹거나 바르는 한약에 대한 코크란 체계적문헌고찰에서는 결론내릴만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결과를 밝히고 있다. (http://www.cochrane.org/CD008642/SKIN_chinese-herbal-medicine-taken-mouth-or-applied-skin-atopic-eczema-children-and-adults)
그럼에도 한의사들은 B등급의 권고를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본 권고안에 대한 근거수준은 낮음으로서 추후 연구가 효과추정치의 확신정도에 중요한영 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크며 추정치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내복약 및 외용약 병행 치료는 근거수준과 편익이 신뢰할 수 없지만 진료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권고등급 B를 부여한다. ”
근거를 신뢰할 수 없어도 B를 줄거면 연구는 뭐하러 하나? 이러면서도 한의학을 근거중심의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소리가 나오나?
최근 한의사협회에서 성명을 통해 자기들도 효과와 안전성 검증을 하고 싶다며, 임상진료지침 개발 등에 대해 의사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다. 한의사들이 세금을 받아다가 어떻게든 효과가 있다는 답이 나오도록 정해놓고 엉터리 지침을 만드는 데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실제로 현재 발표된 5종류의 임상진료지침 중 “하지 말 것”을 권고한 D등급은 딱 한 개뿐이었는데 한방 치료법이 아닌 물리치료에 대한 내용으로 “성인의 급성 족관절 염좌에서 통증과 부종을 줄이기 위해 온열요법보다는 한랭요법을 권장한다” 이었다. 참고로, 과의연에서 분석한 한약 관련 코크란 리뷰 67편 중 효과에 대한 근거가 충분해 권장한다는 결론은 단 하나도 없었다. (http://i-sbm.org/?1A5t4N)
한의사들도 이제는 “수천년간 사용해왔으니 검증이 된 것입니다” 따위의 주장은 더 이상 국민들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한의계가 이제는 예산을 받아서 국민들을 속이는 엉터리 근거를 만드는 수작을 부리려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강석하 kang@i-sbm.org